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칭기즈칸에게배우는 21세기 생존법

CEO 칭기즈칸 (세리, 삼성경제연구소 발행)을 읽고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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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칭기스칸

2003년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왔다. (그렇게 위험한 곳을??)
눈,코, 입이 큰 사람들 속에서 나처럼, 우리처럼 생긴 사람들이 만났다.
물어보니 아프간에서 거주하는 몽골계 사람들로 아프간 현지에선 '하자르'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프간에선 거의 하층에 속한다고,

이들은 칭기즈칸이 전세계를 정복하던 시기 아프간에 정착한 사람들로, 아마 당시엔 잘 살았을 것이다.
들은 이야기로는 아프간 사람들의 심리 밑바탕에는 몽골 사람들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그들은 10명씩(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말을 타고 떼지어 다녔으며 '하자르'라는 단어의
유래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칭기스칸의 후예를 만났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2009년, CEO 칭기즈칸의 우예들을 책에서 다시 만났다.
몇 년 전부터 경영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칭기즈칸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서로 먹고 먹히며 전쟁과 가난으로 살아가는 유목민들에게 칭기즈칸은
'고원 안에서 아귀다툼 할 게 아니라 고원 밖으로 나가자.'제안하며 고원을 통일했다.
이 꿈은 유목민 모두의 꿈이 되었다.

유목민들은 시시때때로 푸른 풀을 찾아 이동을 해야 했기에 속도와 정보수집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치열한 생존 경쟁 사회에서, 단 한 번의 실수가 부족을 망하게 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실력과 능력에 기반해서 리더를 뽑았다.

또한 척박한 사막에서 살기위해서는 강렬한 연대의식과 개인 자질, 인간에 대한 평가가
중요했다.따라서 천박한 성격은 배제되고, 가죽과 천막만을 소유하는 것이 유목민들의
가치였다고 한다. 유목민들의 정복전쟁에서 말과 화살은
현대 사회의 인터넷에 버금갈 정도로 '속도와 정보'의 유통에 큰 기여를 했다.

변화를 중요시 여기다 보니 현실에 대한 안주가 없다. 이것이 농경제 기반의 정착민과 다른 점이다.
이러한 가치를 밑바탕으로 유목민들은 전세계를 상대로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사진, 칭기즈칸]

칭기즈칸 개인의 통치관 역시, 배울 부분이 많다.
그는 다양한 종교(이슬람, 기독교, 불교 등)와 문화를 그대로 인정했으며
기술과 인재를 중요시여겼다. 또하나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칸'임에도 불구하고 결정은 완전한 합의제였다고 한다.
이것이 칭기즈칸이 150년간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를 통치할 수 있던 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기즈칸의 제국은 소위 '망하게'된다.
영원할 것만 같던 제국이 쇠퇴한 까닭은??
유목민들에게 유럽인이 개발한 '총'이 그 원인인데
총의 개발로 유목민의 말과 활은 속도 전쟁에서 뒤쳐지게 된다.
더 중요한 원인은 '유목민'정신이 '정착민'정신으로 바뀌면서인데.
통치와 지배를 하게 되면서 그들에게는 버릴 것보다는 지킬 것이 더 많아진 것이다.
언젠가 칭기즈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자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이 망할 것이다.'
가슴에 새길 말이다.
일본 기업 100년 사에서 기업 평균 수명이 30년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창업자는 창업당시 경제환경을 예리하게 파악해서 회사를 설립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기 떄문에 결국 30년을 넘기지 못한다.
- 책에서 발췌한 내용임-

현대인들은 유목민 못지 않게 속도, 정보력, 이동이 빠른 시대에 살고 있다.
결론은 얼마나 열려 있고, 포용성이 있느냐, 변화에 부응, 대응할 수 있느냐 인 것 같다.
닫혀 있는 곳에 변화는 없다. 기존 세력이 자리를 보존할 때, 일상에 젖을 때 변화는 불가능하다.
나는 얼마나 열려 있는가? 내가 만든 문턱은 어디까지 인가?

일상에 젖어 있는 나를 되돌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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