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칭기즈칸에게배우는 21세기 생존법

CEO 칭기즈칸 (세리, 삼성경제연구소 발행)을 읽고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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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칭기스칸

2003년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왔다. (그렇게 위험한 곳을??)
눈,코, 입이 큰 사람들 속에서 나처럼, 우리처럼 생긴 사람들이 만났다.
물어보니 아프간에서 거주하는 몽골계 사람들로 아프간 현지에선 '하자르'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프간에선 거의 하층에 속한다고,

이들은 칭기즈칸이 전세계를 정복하던 시기 아프간에 정착한 사람들로, 아마 당시엔 잘 살았을 것이다.
들은 이야기로는 아프간 사람들의 심리 밑바탕에는 몽골 사람들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그들은 10명씩(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말을 타고 떼지어 다녔으며 '하자르'라는 단어의
유래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칭기스칸의 후예를 만났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2009년, CEO 칭기즈칸의 우예들을 책에서 다시 만났다.
몇 년 전부터 경영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칭기즈칸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서로 먹고 먹히며 전쟁과 가난으로 살아가는 유목민들에게 칭기즈칸은
'고원 안에서 아귀다툼 할 게 아니라 고원 밖으로 나가자.'제안하며 고원을 통일했다.
이 꿈은 유목민 모두의 꿈이 되었다.

유목민들은 시시때때로 푸른 풀을 찾아 이동을 해야 했기에 속도와 정보수집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치열한 생존 경쟁 사회에서, 단 한 번의 실수가 부족을 망하게 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실력과 능력에 기반해서 리더를 뽑았다.

또한 척박한 사막에서 살기위해서는 강렬한 연대의식과 개인 자질, 인간에 대한 평가가
중요했다.따라서 천박한 성격은 배제되고, 가죽과 천막만을 소유하는 것이 유목민들의
가치였다고 한다. 유목민들의 정복전쟁에서 말과 화살은
현대 사회의 인터넷에 버금갈 정도로 '속도와 정보'의 유통에 큰 기여를 했다.

변화를 중요시 여기다 보니 현실에 대한 안주가 없다. 이것이 농경제 기반의 정착민과 다른 점이다.
이러한 가치를 밑바탕으로 유목민들은 전세계를 상대로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사진, 칭기즈칸]

칭기즈칸 개인의 통치관 역시, 배울 부분이 많다.
그는 다양한 종교(이슬람, 기독교, 불교 등)와 문화를 그대로 인정했으며
기술과 인재를 중요시여겼다. 또하나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칸'임에도 불구하고 결정은 완전한 합의제였다고 한다.
이것이 칭기즈칸이 150년간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를 통치할 수 있던 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기즈칸의 제국은 소위 '망하게'된다.
영원할 것만 같던 제국이 쇠퇴한 까닭은??
유목민들에게 유럽인이 개발한 '총'이 그 원인인데
총의 개발로 유목민의 말과 활은 속도 전쟁에서 뒤쳐지게 된다.
더 중요한 원인은 '유목민'정신이 '정착민'정신으로 바뀌면서인데.
통치와 지배를 하게 되면서 그들에게는 버릴 것보다는 지킬 것이 더 많아진 것이다.
언젠가 칭기즈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자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이 망할 것이다.'
가슴에 새길 말이다.
일본 기업 100년 사에서 기업 평균 수명이 30년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창업자는 창업당시 경제환경을 예리하게 파악해서 회사를 설립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기 떄문에 결국 30년을 넘기지 못한다.
- 책에서 발췌한 내용임-

현대인들은 유목민 못지 않게 속도, 정보력, 이동이 빠른 시대에 살고 있다.
결론은 얼마나 열려 있고, 포용성이 있느냐, 변화에 부응, 대응할 수 있느냐 인 것 같다.
닫혀 있는 곳에 변화는 없다. 기존 세력이 자리를 보존할 때, 일상에 젖을 때 변화는 불가능하다.
나는 얼마나 열려 있는가? 내가 만든 문턱은 어디까지 인가?

일상에 젖어 있는 나를 되돌아 보게 된다.

2009년 11월 21일 토요일

3분만에 읽는 현대인이 알아야 웹2.0사회

2009년 11월20일 다음미래세대재단(다음에서 만든 공익재단)에서 주최한
비영리미디어컨퍼런스 다녀왔습니다.
내용이 참 좋았습니다.

특히 저는 웹2.0이라는 개념에 대해 완전히 이해할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웹2.0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정관념을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자리, 내 영역, 내 위치를 것을 고집하기 보다는
누구와도 열린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웹 2.0 인거죠.
웹 1.0은 관료형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기존의 한국사회가 그렇죠.
웹 2.0은 웹에서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활, 내 업무, 내 인간관계 어디에든 적용될 수 있는 개념같아요.

저같이 비영리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회변화에 대해 더 민감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업무 방식의 변화, 사고 변화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열심히 적었는데요, 주관적인 속기록 함께 공유합니다. 완전 주관적인 속기록입니다.
시간이 되면 잘 정리해서, 다시 공유해드릴게요.
오타 및 연결이 잘 안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이 날 행사 자료가 어디에 올려져 있다고 하는데 전 잘 못 찾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그리고 강사분 소개는 여기서 찾아보시고요. http://changeon.itcanus.net/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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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의 : 사회학자가 말하는 소셜 네트워크 (이재열교수)


- 한국은 연줄사회에서 정보화가 발전하면서 이중의 장을 만들고 있다.
끈끈한 관계(중첩성,강한 유대감, 정서적 도움) vs 약한 관계(정보소통, 소셜캐피탈, 네트웍)
창조적네트워크 : 12명 이내 (세미나, 토론모임, 창조적)
사회적 네트워크 : 도구적 정보적 교환에 유용
political 네트웍 : 정치적, 매스미디어


- 네트워크가 강화되기 위해서는
첫째. 각 조직에서의 창조적 역할을 사람들과의 네트워크 (커넥터 역할/core 그룹의 관리) // 80:20의 법칙
여론을 만드는 20%에 집중한다. 된장녀, 루저녀 현상이 20%의 여론 전달자에서 시작된 것임.
둘째. 내 이해방식이 아닌 상대의 이해방식으로
셋째. 네티즌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

- 조직의 패러다임 변화
패스워드 조직에서 키워드 조직으로 변화 중
패스워드 조직은 미니홈피
키워드 조직은 블로그
조직이 오픈, 윗 세대와 아랫세대의 소통의 잘 되어야 네트워크 조직이 될 수 있는 것임.
실무자가 국장을 쉽게 만나고 의견을 제시 할 수 있는가?
조직의 이질성을 높여야 함. - 다른 문화, 다른 직종과의 교류

- 구조혈
->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네트워크 하는 것

- 기존처럼 인간 관계 처럼 깊은 관계가 아니더라도 의미가 있다.

- 정부와 비정부의 구분이 어려워지고 있다. 유럽연합 같은 경우
각 나라 뿐만 아니라 민간단체도 포함, 초국가적 활동을 만들어내고 있음.
정보가 공개가 되면서 기존의 민간단체, 대학등의 신뢰도 하락.
점점 더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 네트워크는 그물망이다.
개념을 포착, 서로 연관, 균형감각,
네트워크는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이고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무엇을 포착할 것인가는 우리 능력에 달려있다.


2. 강의 : 과학자가 본 사회적 네트워크

- 수학자 '폴엘르도스'의 연구 방식 : 전세계의 영재 학생을 찾아가서 직접 면담, 지적인 자극을 준뒤, 함께 논문을 작성하고 발표뒤 사라짐.
그런방식으로 1500편의 논문을 작성함. 수학이라는 것이 혼자서 쓰는 학문이 아닌 수학이 공동연구를 하기에도 적절하다는
것을 보여줌. 전세계의 학생들에게 영감을 줌. -> 전 세계적인 네트웍을 만듬.


- 모든 인간관계가 6단계만에 서로 연결됨. 이를 곧 스몰월드 네트웍크라고 함.
네트워크는 신종플루, 에이즈등 네트워크는 질병을 퍼뜨리기도 하지만 소통의 가능성도 열어준다.

- 스캐일 프리 네트워크 (어떤 스캐일로 봐도 그 구조가 유사하다.일부구조가 전체구조와 유사)
사실상 20%의 사람들은 굉장한 인맥을 갖고 있고(자이언트 네트웍) 80%는 20%를 통해 네트웍을 하고 있다.

20%의 사람들은 허브(연결지점) 혹은 커넥터(연결자)라고 볼 수 있음.

80%의 사람들은 자이언트 네트웍을 통해 서로를 네트웍한다.


- 네트웍을 하고자 한다면 허브와, 커넥터, 느슨한 관계가 핵심이다.

비영리간의 연대 - 서로 링크 걸어주기, 스스로가 허브가 되는 방법임

서로 의견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이 가진 것을 기여, 보완하는 방식 (참여, 공유, 개방)


3. 강의 : 제이미 "재잘거리며 연결된다." -> 트위터


작다의 의미 : 가볍다, 항상 갖고 다닌다.

웹에서도 작은 것으로 변화 - 즉 마이크로미디어
사소한 이야기도 적을 수 있다. (그것이 서로 네트워크) but : 계속되면 고립

트윗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이란 부정선거건
녹색은 자유를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녹색으로 메인 사진 변경해서 더욱 확대될 수 있었다.
대단한 실천이 아니라 작은 실천

유명인사가 트윗을 하면서 그가 하는 발언에 대해 실천, 그리고 유명인사와 연결된 또다른 유명인사
-> 사회적 발언의 통로

단체보다는 개인을 내세울 때 더 펄로우가 생긴다. "사람과 연결하고 싶은게 핵심이지 단체와 이야기 하고 싶은게 아님"
개인들에 의해 더 연결될 때 활발

왜 트윗이 비영리에 인기일까?
공짜미디어, 어블리캐이션(사회적 의미), 대량노출의 가능성, 직접대화, 같이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참여하면,
실명에 가까운 아이덴티티

트윗나눔 - 트윗을 쓸때마다 1원씩 기부

미투데이,,

여튼 기존과는 다른 네트워크 방식

트윗에서의 네트웍이나 기부의 특징은 트위터들이 편리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것, 편하게! 하는게 핵심

투윗이 새로운 방식의 미디어이다 보니 그와 관련된 행사들도 굉장히 창조적이다. : 자선활동이 그 특징

짧고, 간단하고, 더 가까운 미디어, 빨리, 새로운 미디어에는 새로운 접근법, 개인으로

너무 푸쉬하면 안된다.


4. 강의 : 모바일이 가져올 변화

강의 키워드 : 일본&아이폰

QR코드 : 핸드폰으로 찍으면 정보가 나옴.
수족관에서 특정 물고기에 대한 정보, 부동산 정보, 내가 산 과자의 성분 정보, 앞으로는 큐알코드만 봐도 제조사 확인 가능
원산지 조회 기능 -> 실 생활에 유용하게 쓰인다.
미술작품 앞에서 작품에 대한 소개가 나옴. 일본은 이미 모바일 시장이 폭발적 성장

사회공헌적인 측면에서도 QR코드를 사용하고 있음.

아이폰은 인터넷 머신 - "아이폰을 이용하기 시작한 후, PC이용 빈도수가 이전보다 1/10로 줄어들었다.
피씨보다 휴대폰을 통한 인터넷 접속 빈도가 높아지고 있음.

(모바일 기능)에어택을 통해 -> 휴대폰으로 보는 것에 대한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
gps(위치추적시스템)와 연계되어 진행

과감하게 모바일 세상으로 나와라!!

주관적 의견 : 컴퓨터 이후의 세상! 모바일이다. 준비하자


5. 강의 : 웹 2.0 이후의 세계와의 연결을 준비하라 (정진호) / 트윗 아이디 : phploveme

- 온라인에서의 가치란?
정보, 경험, 디지털 컨텐츠 -> 가치는 주관적이다. 나한테 별 소용없는 정보가 누군가에겐 쓸모 있는 정보가 됨.
개개인의 작은 경험이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아껴줄 수 있다.
사람들은 다른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 인터넷에서의 협업이 그 사례
혼자서 하는 것은 무리다.

- 사례 1. flicker -> 원본사진 올리는 서비스 (야후)
플리커라는 사이트에 사진을 올린 이후
-> 원본을 올린게 핵심-> 많은 사람들이 공유 -> 더 많은 가치을 알릴 수 있음.
저작권만 밝히고 공유한다.
원본으로 (이름 밝히는 것보다), 원본을 올려야 함.

이 자료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위키피디아에서 한국자료 올릴 수 있었음.

- 웹 2.0시대의 협업 사례
ignite라는 행사를 준비함. 이미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는 행사임. 국내에서 최초로 진행하였음
(ignite : 20슬라이동 15초 = 5분 (5분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길 해보는 행사)
이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웹2.0을 이해할 수 있음.

트위터로 빠른 홍보, 블로그로 구체적인 자료 제공, 슬라이드쉐어 사이트 사용, 발표자선정 -> 네티즌이 직접 선정, 온오프믹스를 통해 참가자 선정, 트위터로 자원봉사자 모집

** 이런 과정들이 새로운 미디어에 적합한 업무 방식이다. 기존의 업무방식과 다르다.
확실히 이 사람은 업무 방식이 우리와는 다르다.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느슨한 연대를 하고 있는 사람.

sns를 활용한 네트워크 -> 여러사람의 노력으로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web 1.0에는 기술적 제약이 있었으나 -
web 2.0에는 제약이 없음.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고민

더 많이 공유할 수록 더 좋은 일이 생긴다.


6. 강의 : 소셜 네트워크로 소셜 체인징하자. (박남호/사용자 경험 컨설팅)- 웹2.0키워드 : 싸이월드, 블로그, 유투브, flickr, 트위터 등

- 혁명적으로 지식을 체계화하라 -> 지식의 변화 (정부, 도서관등 공적인 영역에서의 지식 공유하며 파워를 갖고 있음)이제는
다 퍼갈 수 있는 상황, 파워가 일반인에게 환원된다. 이것이 웹 2.0의 핵심이다.

- 공유가 핵심 (퍼가는것) -> 협력-> 공동작업-> 사회공익적 집합체(사회를 변화시키는 집단을 만들 수 있다)
* 이란 선거의 예 : 단순한 공유에서 사회변화까지 이끌어 낼 수 있다.

- 웹의 변화과정

공유(싸이월드)-> 협력(다른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하게 함) -> 공동작업(오픈소스) -> 사회공익적 집합체(위키피디아, 리눅스 등)
* 위키피디아가 생김으로 더이상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백과사전을 찾지 않는다. 공동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지식을 믿는다.
*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 : 리눅스도 사람들의 자원봉사를 통해 이뤄진 것
리눅스가 없었으면 웹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것

- 관계의 변화

1단계 : 직접면담이 가장 효과적 일것 / 2단계 : 책 출판 / 3단계 : 인터넷
* 지금은 인터넷이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 매스미디어는 일회성적인 효과

- 기존에는 의사소통이 일반적이었으나 인터넷 이후부터는 피드백이 중요해짐.
기존에는 피드백이라는게 몇 명의 피드백만 있었으나 이제는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있으며
결국에는 그룹체까지 만듬 (델 컴퓨터는 서비스가 안 좋다는 내용으로 dell hell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어버림. 이 결과를 보고 델에서는 고객불만을 접수하는 사이트를 만들어

이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했음-> 바른 대응)

- 어느때보다 지금이 사회공익을 우해 봉사하고 있는 조직들이 사용할 수 있는 툴들이 많이 제공되고 있음. 비영리기관에서는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전파력이 커짐.

- 아쇼카 ashoka재단의 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을 지원, 펀딩, 육성하는 조직
이 조직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서 changemaker.com 만듬
매주 네티즌이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 대회 (자기 아이디를 공개) -> 한달동안 오픈소스를 하면 프로그램을 서로 보완해나감.

1인이 아이디어를 내는게 아니라 초기 아이디어를 낸 뒤 함께 완성하는 과정

(오홋 좋은 방식인데??)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해볼 수 있을까? 작은 것부터 인터넷으로 해볼 수 있다.
예를들면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캠페인 기획 같은 것을 오프 소스 방식으로 해볼 수 있겠다.
** 오호!!!!

(사용자가)협업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홈페이지 구성 및 툴 활용해야 함.

소셜 체인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방식으로 비영리 기관에서도 고민해야 하고 사이트 구성도 web2.0방식해야


사용자를 이해한다,
사용자들이 모이는 곳에 간다.
사용자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




7. 강의 : 소셜네트워크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인류의 지혜를 말한다.


1인미디어와 sns는 서로 상호보완적 관계를 가진다.
블로거와 트윗을 함께 해야 작용이 커진다.

도미노 피자 비위생 사건 -> 유투브에 사과 동영상 올림 (이전에는 기자들을 찾아서 전화했었음)

뭐든 개방을 해야

미국 정부는 모든 정보를 사이트에 공개하고 있음. -> 공개가 되어 많은 정보를 재생산하고 있음.

짧은 시간에 불을 붙일 수있으면 성공 -> 속도성이 빨라야

트윗은 개방의 힘으로 1만개이상의 어플리케이션(연동 프로그램이)이 있다. -> 싸이월드는 다른 프로그램과 전혀 연동이 안됨. --- 그래서 점점 쇠락
개방과 사용자의 힘으로 운영이 되고 힘을 발휘할 수 있다.

8. 관계를 이끌어내는 창의적메시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tbwa코리아 수석크리에이터 / 박웅현)
창의적메시지는 어디서 나오는가?


평소의 음악
평소 걷던 거리
평소 먹덕 음악
평소 보던 그림
평소의 생각
평소 만나는 생각

등--- 여기서 일상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내게 각인된 것을 활용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라는 카피를 만듬
광고는 일상에서 나온다.
책을 읽다가 줄을 그어 놓는다.
미술관에서 인상깊게 본 그림 엽서는 꼭 산다. - 이 후 활용

광고는 문제해결이다. -> 포인트 : 일반 사람들과의 관계형성
기업은 광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함-> 즉 소비자의 마음을 흔들어야 함. -> 즉 관계 형성이다.
관계 형성을 무엇을 해야 하고, 창의성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

"생활"

광고에 무엇을 담겠는가? '광고에 생활이 아니면 무엇을 담겠는가?'

생활과 일상을 발견(안테나를 세우는 것)하는 것 -> 그것이 창의력이다.


2009년 10월 26일 월요일

문규현 신부님, 건강하셔요!

문규현 신부님을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때 한겨레 21 표지모델로 문정현신부님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였다.

대학교 입학 후
새만금에서
3보1배 현장에서 보아온 신부님.
종교가 다른 동지인 수경스님과 함께 이 시대를 밝혀 오셨던 분
옆에 있는 것만으로 아픈 이들에게 힘이 되시던 그 분

억울하고 약하고, 작은 이들을 품어오던 아버지 같던 분!

건강하세요.

2009년 9월 6일 일요일

내가 본 배우 한지민,그녀의열정에박수를

내가 본 배우,한지민



한지민씨가 책을 냈다.
인터넷에서 한지민씨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주로 말하는 '착하다'는 말,
사실이다.
그러나! 심심한 그 말에 '열정'이라는 단어를 덧붙이면
한지민씨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된다.

함께 봉사를 하면서 본 그는...
일반 사람보다는 조금 더 많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봉사나, 연기나, 사람관계에 있어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팬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모든 것을
보란듯이 당당히, 예쁘게 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거리에서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1,000원이면 굶주리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어요."라고 꿋꿋하게
외치는 모습 (사실 이런 일은 여러번 모금을 해본 사람도 힘든 일이다.)
행사장에 찾아온 팬들을 위해 조용히 피자를 사주고, 이름을 불러주는
그 모습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예쁜 한지민씨가 책을 냈다. 이 책의 인세는 필리핀 오지 마을 어린이
교육을 위해 사용된단다. 책에서 보이는 한지민씨의 모습, 딱 그 모습이
한지민씨의 진짜 모습이다. 그렇게 뚜벅 뚜벅 자기 길을 걸아가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
그리고 그녀의 열정을 격려 하고픈 사람은??
아래의 책을 함께 봐도 좋겠죠? ^^


-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 95쪽에서 발췌한 내용-
집, 나무, 꽃, 사람, 풀,
그리고 하늘과 별, 날아가는 새....
아이들은 본 것만 그린다.
그들에게 세상은 그것이 전부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다채롭고 화려하고 아름다울까?
크레파스로 처음 색을 칠해본 아이들의 색감이 너무 밝아서
그리고 색이나 그림에 대한
아무런 편견 없는 자유로움에 나는 또 한 한번 놀란다.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 - 10점
한지민 지음/북로그컴퍼니


2009년 9월 5일 토요일

'제이슨므라즈'폭빠질수밖에없는노래2곡

노래 2곡을 소개합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Jason Mraz의 노래입니다.
한국 내 팬이 굉장히 많다죠.
특히 올해에는 lucky라는 듀엣곡이 유행이었죠.
이 노래는 오래 들으면 약간, 심심해지는 감이 있습니다.

지금 소개할 곡들은 제이슨 므라즈의 폭팔적인 가창력을 넘어서서
젊은 시절 뭔가에 폭 빠진 그 시절을 연상하게 하는
노래들과 가사들이 인상적입니다.
그래서 이 노래에 빠지나 봅니다.
자 갑니다.

아 그리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이슨므라즈의 고정'코러스' 아시죠
이 분은 두번째 곡에서도 코러스를 하셨군요.
이 분 제이스므라즈 한국 공연때도 거의 메인으로 나오셨죠.
이 분의 코러스가 없다면 우리 제이슨 므라즈의 매력도 아마 반절로 줄어들겠죠.
이 분의 멋진 코러스 - 다음에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butterfly라는 곡이죠)
개인적으로는 거리의 야외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제이슨 므라즈를 좋아합니다.

첫번째 곡 "You and I both"


두번째 곡 "Please Don't Tell Her"



2009년 9월 4일 금요일

[동물농장]인간모두에게던지는조지오웰의메세지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인간 모두에게 던지는 메세지"

소설을 완성하고도 1년 뒤에나 발행된 책,
출판사에서 발행을 꺼린 책,
'동물'이 주인공인 이 책이
결국에는 인간을 향해 있다는 것을 감출래야 감출 수가 없다.
우여곡절 끝에 나온 이 책은 동물을 빌려, 가깝게는 스탈린시대의 소비에트를
혹은 인생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것은 작가의 힘이다.
한 순간의 초심을 잃으면 아니 거창하게 초심이라는 단어를 빼고서라도
순간 자신의 안락과 편위에 당위를 붙이게 되면 (그렇다고 고행을 하자는건 아니다.)
결국, 수없이 들어온 개혁세력의 변질과 같은 실수에 빠지게 된다.
거창한 말을 붙이지 않더라도
많이 얻기 위해 아둥바둥 하는 것
싫어하던 사람의 모습을 어느덧 닮아 가고 있거나
나도 모르게 경쟁심리가 작동해서, 상대방이 잘되는 것을 못 볼때 등등

책에서 동물은 인간이 다스린다는 진리(?)를 뒤엎는다.
동물들은 깨끗한 물
맛있는 먹이
채찍으로 서로를 때리지 않는,
적당한 노동을 하는
인간이 혁명을 외칠 때
말하는 모든 것을 원하고 있었다.

농장에서 주인인 존(인간)을 쫓아내고
혁명에 승리한 뒤 7계명을 만든다.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혁명이 지나자, 엘리트 간의 경쟁, 지배체체가 만들어진다. 동물들은 혼란스러워진다.
재미있는 일화는 동물들 중 가장 영리해서 다른 동물들에게 비전을 주고
인간으로부터 해방을 외치던 돼지들이 동물들의 지배계층이 되어간다.
"우리는 조직을 관리하고 당신들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야." 라는 한 마디로 모든 불만을 잠재운다.
관리하고 점점 자신들만의 공간, 돼지만을 위한 교육, 돼지만을 위한 특권이 생기며
결국, 스스로만든 7계명을 무너뜨린다.
다른 동물들은 말라가고, 돼지들은 피둥피둥 살이 찐다.
혁명의 끝은 이런 것을까?

결국 동물들은
인간 '존스'- 그들이 주인님이라고 부르던- 다스릴때가 행복했는지
돼지가 다스리는 지금이 행복한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모든 특권을 누리고, 인간이 하던 모든 행위를 닮아가는 돼지가 사람인지
돼지인지 - 결국 모든 탐욕은 인간, 돼지 없이 닮아갈 뿐이다.
그들에게는 이건 혁명이 아니라 다만 자신들을 괴롭히던 인간 '존스'에서
돼지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결국 순수했던 때의 이상을 잘 지켜내기 위해서는 도덕성이나 윤리적 부분에 대해(특히 내가 해당될때는 더욱더)
더 예민해지는 방법 밖에 없다.
그리고 자기 성찰만이...
이 책에서는 동물의 혁명을 다뤘지만 결국 인간의 혁명 또한
그리고 혁명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초심을 잃어버린 조직, 가정, 사람 모두에게
던지는 메세지가 아닐까.



동물농장 - 10점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민음사

2009년 8월 20일 목요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바람과 같이 왔다가
바람 같이 가신 분.
우리네 삶도 그러하겠지만

그는
우리에겐 따뜻한 바람이었다.
스스로의 삶엔 거친, 모진 바람이 많이도 불었다지
그에게 있어 따뜻한 바람은 무었이었을까?
이제서야 그 분의 마음이 느껴지네.

함께 있을때는 모를,
어리석게도 사라진 다음에야 알게된다.
수천년, 수백년 살아있는 사람들은 반복한다.

2009년 8월 14일 금요일

'영화국가대표'낯설지않는캐릭터의힘





얼마전 본 영화 '국가대표'
스포츠영화? 게다가 남자들만 나오는 영화에 별 흥미가 없기에
같이간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는 심정으로 심드렁하게
극장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올때는 훌쩍이며 완전 감동에
겨워하며- 엔딩 자막까지 다 보고 나왔다.


김용화감독의 힘 '낯설지 않는 캐릭터'
김용화 감독은 별볼일 없는 사람들을 별볼일 있게 만드는데 큰 재주가 있는 듯 하다.
전작 미녀는 괴로워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주인공 한나의 아버지는 - 정신병원에 있고, 어머니는 안 계시다.
한나 본인은 미모의 가수를 대신해서 노래를 부르는...? 일정한 직업이 없는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다. 현실에서는 비록 우울한 인생이지만!
그래서 낯설지 않는 캐릭터?

이 분, 이번에도 능력을 발휘했다.
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없지만 생활 속에선 익숙한 존재를 잘 담아내었다.
밤업소의 웨이터(최흥철), 한국에 돈 벌러 온 중국교포(주인공 마재복의 부인),
아버지가 일하는 식당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착한 청년(마재복)
슬픈사연을 가진 입양아(차현태/밥)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젊은 가장(강칠구)
... 그리고 우리 사무실 근처에서 정말 자주보는(매일 컵라면을 먹고 있는) 다단계(방수연)
하나 같이 별 볼일 없다.
별 볼일 없는 그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까닭은
누가 보아도 '장애'라고 할 만한 것을 극복해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장애(혹은 헝그리정신)는
영화에서 감동을 이끌어내는데 없어서는 안될 요소인게다.

김용화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은 그냥 보통의 사람들이다.
김용화 감독의 힘은 여기에 있다.
현실적인 캐릭터들, 그러나 현실이었다면 너무나 칙칙한 삶이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 어려움을 정말 극복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거다.
어쩌면 배고픈 60년대 이후를 보란듯이 극복해낸, 사람들은 '기적'을 믿는 것이고
그래서 이 비루한 인생에서 '희망'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거다.

극장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 비루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휴머니즘도
나오는 것임을... (꽃보다 남자가 줄 수 있는 재미와는 다른)
아무리 힘겨워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사담이지만, 김용화 감독은 그냥 '보통(서민)'의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들이 있기에
영화도 성공했으니까! (물론 감독의 능력도 대단하지만요) 그래서 이 참에서 사회봉사활동등에도
관심을 가져보심 어떨지요??? 으하하

2009년 8월 8일 토요일

서민의 삶! i don't care?

서민의 삶! i don't care?

경제가 안정화? 내 주머니 사정은 안정 되었을까?
언론에서는 경제가 어느정도 안정화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나 애석하게도 소위 서민층(?)이 표현을 좋아하진 않지만, 저소득층이라고 해야 할까
의 주머니 사정은 언제쯤 안정이 될까요?

자본주의의 벼랑 끝에서,
거대 시장 속에서,
일반 시민들이 살 길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찌보면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생활의 최전선에 있는
자영업자들도 들고 나서고 있으니 말이니까요.

요즘대학생들의 적은??
언젠가 제가 존경하는 분이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 전의 대학생들에게는 독재가 적이었으나, 요즘의 대학생들에게는
자본주의가 적이다.이게 더 큰 독이다."
맞습니다. 대학생들 학비고지서 보고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합니다.
학비 때문에 학자금 대출과 알바 등등
어떤 꿈도 가질 수 없어요.


직원들만 사는 세상
또 한 분의 스승은 그리 말씀하셨어요.
'한국은 앞으로 굶주리는 사람은 없겠지만, 대신 큰 부자도 나오긴 어렵다. 다 고용되어서 살아갈거다.'
이 말도 요즘들어 정말 수긍이 갑니다.
앞으로 자영업자들이나 소규모 사업자들을 살아 갈 수 없습니다.
다 어느 대기업이나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으 살아가겠지요.
이는 즉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보다는
누군가에게 소속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겠지요.



서민의 삶! i don't care?
그래서 대한민국의 일반 시민들의 미래는 밝지 않다고 보아요. 지금으로서는요!
큰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죠.
왜냐면 누구도 이 서민의 삶에는 관심이 없는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명걸그룹 2ne1의 노래 i dont care가 생각납니다.

여튼 요즘 저의 화두는 '일반 서민층의 삶을 어떻게 보호, 튼튼히 할 것인가?'입니다.
이 말은 꼭 '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의 삶을 보호하고 이들에게도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곧 내 문제이기도 합니다.


부가세는 올라가고
학비는 비싸지고
물가는 오르고
땅값 오르고
어느 지자체는 급식비를 축소한다고 하고요,

위에서 보듯이 누구 하나 서민층을 대변할 큰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거든요.
아예 기초수급대상처럼 빈곤하거나, 혹은 잘 살거나
그 중간은 발 디딜 곳이 없어 보입니다.


한나라당, 민주당에서 말하는 '국민'은 도대체 누굴 말하는 것일까요?
조선일보가 말하는 국민은 '재벌, 우리나라 상위 1%'인건 누구나 알고 있으니 기대는 안 합니다.
그렇지만 소위 서민, 민중을 대변한다고 하는 한겨레신문 조차도
서민 생활에는 그닥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너무 이념에 치우쳐있다고 할까요?
물론 서민들이 장기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미디어법, 4대강 반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쉬운 건 너무, 서민생활을 안 다룬다는 거죠.
그나마 요즘은 ssm이 너무 문제가 되다보니까 조금 많이 다루긴 해도,
서민생활에 획기적인 기사 나온거 본적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겨레 신문은 '일반 서민들의 이념에는 관심이 있어도 주머니에는 관심이 없는거죠'
이 두가지가 조화를 이루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서민층의 호주머니에 대한 관심,
어떻게 호주머니 안에 있는 것을 내것으로 만들거냐, 이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이 호주머니에 밥 사먹을 돈을 채워주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니 그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호주머니를 채워주지 않더라도
구멍을 만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토로식의 글말고 뭔가 대안적인, 글을 다음에는 쓰고 싶습니다.


2009년 5월 28일 목요일

[펌]내가 반했던 남자, 노무현 (김어준)


내가 반했던 남자, 노무현
(딴지일보 / 김어준 / 2009-05-25)





88년이었을 게다. 그 날은 아침부터 재수, 삼수생 몇 명과 모여 학원 대신 종일 당구를 치고 있었다. 그 시절 그 또래가 5공의 의미를 제대로 알 리 없었다. 게다가 일주일치 식대를 걸고 내기당구까지 치고 있었으니 당구장에서 틀어놓은 5공 청문회에 대한 관심도는, 다이 위의 하꾸 각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멈춘 공 앞에 서고 보니 하필 TV와 정면이었고, 그 순간 화면엔 웬 새마을운동 읍내 청년지부장 같이 생긴 남자 하나가 떠 있었다. 무심하게 허리를 숙이는데, 익숙한 얼굴이 언뜻 스쳐갔다. 고개를 다시 들었다.

정주영이었다.

그 남자는 몰라도 정주영이 얼마나 거물인지는 그 나이에도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그 촌뜨기가 그런 거물을 상대로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갑자기 호기심이 동했다. 타임을 외치고 TV 앞으로 달려갔다.

일해재단 성금의 강제성 여부를 묻는 질의에 "안 주면 재미없을 것 같아" 줬다 답함으로써 스스로를 정경유착의 공범이 아니라 군사정권의 일방적 피해자로 둔갑시키며 공손히 '회장님' 대접을 받고 있던 정주영을, 그 촌뜨기만은 이렇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촌뜨기 : 시류에 순응한다는 것은 힘 있는 사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간다는, 그러한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정회장 : ...

촌뜨기 : 그것은 단순히 현상유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좀 더 성장하기 위해 힘 있는 사람에게 접근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까?

정회장 : 힘 있는 사람에게 잘못 보이면 괴로운 일을 당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영합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촌뜨기 : 혹시 그 순응이, 부정한 것이라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정회장 : 능력에 맞게 내는 것은 부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촌뜨기 : 일해가 막후 권부라는 것이 공공연히 거론되기 이전에는 묵묵히 추종하다가, 그 권력이 퇴조하니까 거스르는 말을 하는 것은 시류에 순응하는 것이 아닙니까?

정회장 : ...

촌뜨기 : 왜 부정이 아니라면 진작부터 6.29 이전부터 바른말을 하지 못했습니까?

정회장 : 우리는 그러한 용기를 가지지 못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촌뜨기 : 이렇게 순응하는 것이, 힘이 있을 때는 권력에 붙고 없을 때에는 권력과 멀리하는 것이,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가치관의 오도를 가져오게 하고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보지 않습니까?

정회장 : ...

당구 치다 말고 TV 앞에 모여든 놈들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와, 말 잘 한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순식간에 끌렸던 건 그의 논리와 달변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의원들이 거대한 경제권력 앞에서 스스로 한껏 자세를 낮추고 있을 때, 그만은 정면으로 그 권력을 상대하고 있었다. 참으로 씩씩한 남자였다. 그건 논리 이전의 문제였다. 그건 가르치거나 흉내로 될 일이 아니었다. 난 그렇게 노무현을 처음 만났다.




그 날로부터 20여년이 흘렀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많은 일들을 여기서 다시 한 번 되짚는 일은 그만 두련다. 한참이나 기억을 늘어놓다 다 지워버렸다. 그건 다른 이들이 잘 할 테니까. 그 사이 뭘 잘 했고 뭘 못 했는지 하는 이야기도 그만 두련다. 그 역시 다른 이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지금은 그저 20년 전 처음 만났던 그를 오늘 이렇게 보내고 마는 내 개인적인 심정만 이야기 하련다.

난 그를 두 번 직접 만났다. 부산에서 또 다시 낙선한 직후인 2000년 3월이 처음이었다. 그에게서 반드시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를 한 번은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정말 그렇게 씩씩한 남자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당시 인터뷰 내용은 차일피일 게재를 미루다 그냥 덮고 말았다. 어차피 만남 자체가 목적이었으니까.

그 다음 해인 2001년, 해수부 장관 시절 그를 다시 한 번 만났다. 그때 이야기는 2002년 대선의 잠재후보군을 연쇄 인터뷰하던 시리즈의 하나로 지면에 실었다. 당시만 해도 그를 유력후보라 부르는 건 사실상 억지였으나 그리고 대통령에 실제 당선될 확률은 거의 제로라 여겼으나, 그것과 무관하게 그의 인터뷰를 꼭 싣고 싶었다.

그렇게 두 번의 만남에서 오갔던 말들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 하나 밖에 없다. 그는 진짜로, 씩씩한 남자였다는 거. 그가 대통령으로 내린 판단 중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고 지지할 수 없는 결정들도 많았으나 언제나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건, 그래서였다. 정치고 뭐고 다 떠나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씩씩한 남자였다. 스스로에게 당당했고 그리고 같은 기준으로 세상을 상대했다. 난 그를 정치인이 아니라, 그렇게 한 사람의 남자로서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런데 그가 투신을 했단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죽음이 갑작스러워서는 아니다. 사람의 이별이란 게 그렇게 갑작스럽게 닥친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그와의 첫 만남도 아무런 예고 따윈 없었으니까.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그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 죽음의 방식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돌아올 줄 알았다. 최근의 뉴스에 별반 관심이 없었던 것도 그래서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난 그를 완전하고 흠결 없는 정치인으로 좋아했던 게 아니었기에. 뭐가 어찌 되었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돌아올 거라 여겼다. 그는 내게 그만한 남자였다.

그런 그가 투신을 했단다. 투신이라니. 가장 시답잖은 자들에게 가장 씩씩한 남자가 당하고 말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억울하건만 투신이라니. 그것만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죽음이 아니라 그게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아 하루 종일 뉴스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투신 직전 담배 한 개비를 찾았다는 대목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씩씩한 남자가, 마지막 순간에 담배 한 개비를 찾았단다.

울컥했다.

에이 씨바... 왜 담배가 하필 그 순간에 없었어. 담배가 왜 없었냐고. 에이 씨바... 그거는 피고 갔어야 하는 건데. 그때 내가 옆에서 담배 한 개비 건네줬어야 하는 건데. 그가 그렇게 가는 걸 말리진 못한다 하더라도 담배 한 개비는 피우고 가게 해줬어야 하는 건데. 노무현은 그 정도 자격 있는 남잔데. 그 씩씩한 남자를 그렇게 마지막 예도 갖춰주지 못하고 보내버렸다는 게, 그게 너무 속이 상해 눈물이 난다.

그에 대한 정치적 평가도, 정권에 대한 성토도 지금은 다 싫다.
지금은 그저 담배 한 개비를 그에게 물려주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못했다는 게 너무 속이 상할 뿐이다...
그 담배 한 개비는 피고 갔어야 했는데...
그게 속이 상해 자꾸 눈물이 난다...

나머지는 다음에,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하자...


두 번째 만남에서 너무 촌뜨기처럼 담배 핀다고
묻어 뒀던 사진 한 장, 이제 그의 곁으로 보낸다.




딴지총수(oujoon@gmail.com)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46981

2009년 4월 26일 일요일

20대실업자,어디서눈치밥을먹나


젊은실업자&직장인, 그들은 어디서 눈치밥을 먹고 있는가?

엊그제 행복한 출근길(법륜스님)을 읽다가
친구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들은 어디에서 눈치밥을 먹고 있는가?]
올해 27살이 돼지띠 내 친구들,
대학졸업한지 2년이 넘었으니 취직한 친구들은 사회초년생으로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어떤 친구는 방 안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다.
인터넷을 떠돌며 이력서를 보내거나
탈출구로서 지루한 대학원을 택하기도 한다.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내 소중한 친구들...
한 때 눈부신 햇살처럼 빛났던 친구들이 하나씩 하나씩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은 왜일까?
실업자수 92만명, 92만명 - 그 무시무시한 숫자가 곧 내 친구들의 삶이다. 그래서 슬프다.

정부가 거나한 대책을 세워달라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제도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정책입안자가 아니므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주로 생각하련다. 사실 정책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없다.!)
내 관심사는 눈치밥을 먹고 있는 내 친구들이 행복해졌으면...하는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27살을, 아름답게 힘차게 살았음 하는 것이다.


[눈치밥1. 계약직 근무처]
내 친구 안00, 모 학교에서 조교로 3년간 일하고도 비정규직 규정에 따라 짤렸다.
(물론 계약이 끝난거지만)누가 이 시기에 정규직원으로 채용하겠는가?
친구는 짜장면 집에서 내게 이 사실을 토로하며- 분개했다.
세상이 이럴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그 시점에 회사가 비상식적으로 행동했단다.
통지도 안 하고,
그래도 다행히 다른 회사로 갔다. 월급 100만원 받는 곳으로,
그 친구 돈에 대한 욕심은 이제 비웠다. 마음을 비우고 다행히 이제 웃으며 일하지만,
솔직히 말해 거기 안 가면 갈 곳이 없다. 이게 현실이다.
그냥 봉사하는 마음로 일하겠다고 한다.
그 곳에 뭔가를 배울 거라고 한다.
세상의 풍파가 그 친구를 거의 수도승 수준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나 이 친구, 진정 존경한다. 정말 건강한 친구다.

[눈치밥2. 신림동의 고시촌 어딘가에서]
내 친구 박00, SKY라는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을 한다고, 고시촌 들어갔다.
혼자 자취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고시촌이라는게 사람을 얼마나 우울하게 하는지,그 순진하고 순진한 내 친구,
마음이 허해서 매일 밤 소주를 마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 들으며 난 눈물이 났다.
왜 이들이 의지할 곳이 하나도 없나. 그 친구는 주변 친구들도 너무 힘들기 때문에
우울한 이야길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긴 터널을 지나, 다시 힘겹게 시작하는 내 친구, 긴 슬럼프를 잘 견뎌내었으니
이제 내 친구는 더 성장한 거 같다.

[눈치밥3. 학원]
사교육이 문제다 문제다 하지만, 학원이 없었으면 내 친구들 다~~ 실업자가 되었을거다.
어디서 일해? 묻으면 대부분이 '학원'이라고 한다.
사교육시장에 경이를 표할 뿐이다.
미국에서 6년이상을 공부한 친구도 학원에서 일하고 있다. 친구의 재능이 너무 너무 아깝다.
그를 데려갈 회사, 어디 없나???


병아리 같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든든한 그늘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든든한 그늘이 없다.이건 냉정한 현실이다. 다 각자의 몫이다.
현실을 이겨내면 그나마 강단있는 서민이 되고, 없으면 자학, 우울의 숲에서 헤맨다.
그러한 현실에서 우린, 인간이기에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고,
때론 삶을 잘 살아온 사람에게 인생을 배울 필요가 있다.

아래는 어제 읽은 책의 한 구절

오늘날 우리 사회는 끊이없이 경쟁을 붙여서 대가를 뽑아내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을 얻는 사람도 늘어나고,
그 경쟁이 싫어서 포기하면 낙오자가 되어서 또 다른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즉, 스트레스를 받느냐, 아내면 낙오자가 되느냐 이런 식입니다.

중략...

이처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 에너지를 소진하지 말고
경쟁하지 않는 길로 가면 됩니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아니고 경쟁을 안 하는 겁니다.
그것을 놓아 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게해서 자기 삶을 온전하게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사람들과 휩쓸려서 뒤따라 다니면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바람이 멈추는 순간,
어느 개울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그런 허망한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법륜스님의 '행복한 출근길'에서 발췌-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아니고 경쟁을 안 하는 겁니다." 라는 말이
나에게 짧은 휴식을 주게 한다.
이 말, 한번 곰곰히 씹어봐야겠다.

2009년 4월 21일 화요일

sad korea

Minerva is win.
Minerba is very famous bloger in korea.

Well... 1 yeas ago
He used to wrote a essay about economy on his brog.
He used t0 guess about korea economy and it means criticize to korea goverment.
so, he arrested. Many people can't believe that.
but he stayed 90 days in a jail.

yesterday,
A court of justice is decide that he is not guilty.
so i'm happy.
and i'm sad too.
because we live in place of not free about various opinion and critism to big power.

2009년 4월 2일 목요일

새로운운동방식에대해고민하다

언론탄압이 장난이 아니다.
풍전등화다.
ytn 노종면 노조위원장이 구속되었고
(노종면씨가 석방되길 기원합니다.)
pd수첩 이춘근 피디는 구속되었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국경없는 기자회'의 브로셀이라는 기자까지 한국에 와서
상황을 조사했다고 한다. (다시 돌아갔는가?)

이게 웬 창피람...
해외에서 이런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거 고맙지만
솔직히 부끄럽다.(쪽팔린다. T.T)

이 일이 신속히 해결되었으면 하는데
02학번인 나에게
걱정거리가 있으니 그건 바로...

이 사건을 잘 해결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정부다 집권여당, 보수 언론, 자본들의 총공세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일단 모여서 해결책을 찾는 노력은 감사한 일이지만
전부터 운동방식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02년에 미선,효순이 사건때 우리 세대들은 촛불집회라는 평화적인 시위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건 분명 어필이 되는 거다.
그런데 그 다음은...?

결국 다시 진행 중인 것은
기존 - 운동권 특유의 운동 방식이다.
아침이슬, 임을위한행진곡(?), 8박자 구호
등 더이상 그런 방식으로는 안된다! 하지만서도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으니...

이거 정말 고민된다.
가장 최근에 참신하고 좋았던 것은
블로그를 통해 네티즌과 소통
그리고 최근 MBC의 외국어 파업 관련 동영상 제작 (유투브)
신선했다.
고민이 단번에 해결되진 않겠지만

내가 지금 거리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이상
내가 선 이 자리에서 하나씩 해볼 수 있는 것을 고민해보려고 한다.

에고, 이 늦은 밤 일을 산더미 처럼 쌓아놓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으니 쩝!
일하자

우석훈에게고마운까닭







[ 사진 ; 88만원세대의 저자 우석훈씨]
우석훈에게고마운 까닭


농업을 다뤄줘서 고맙다. (너무 단순한 이유인감??)
지난주 시사인에 우석훈씨 고정코너을 읽으며 이런 내용도 다뤄주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그 까닭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까지 읽지 않았지만귀농과 같은 낭만으로 기억되거나 혹은 아예 잊혀진 '농업'에 대해 다뤄준 까닭이다.그것도, 유명한 진보(?) 학자가 말이다.


나역시 서울것이만... 다시 돌아가야 함을 알고 있다.
나도 그가 표현한 것처럼 '서울것'이지만농업고등학교를 (나름 유명한) 나왔고,도시 텃밭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옥상에서 상추, 고추, 토마토, 호박등을 심으며 위안을 삼고 있다고 할까.얼마전 대추를 먹고나서 남은 씨앗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봄이오면 언젠가는 심으리라'다짐하는 중이다.


27살 내 친구는 농부이다.
27살이지만 내 친구 주아무개는 농대에서 착실히 공부하고친환경 농사를 짓겠다는 꿈으로 (아버지도 농부이다.)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친구 네이트메신저 대화명이 '작은농부'다. 귀엽다. 친구와 후배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농업이론 및 행정을 공부하는 친구와이미 농업 현장에서 돼지키우고 농사 짓는 친구 사이에서 큰 논쟁이 붙곤한다.이 모습, 마치 농업진흥청이나, 농림부와 농민간 - 소통이 안 되는 모습을 연상케하지만그런 모습이 재미있다. 이런 젊은이도 있다니까... 하면서 말이다.


조금 아쉬워도 이 정도면 감지덕지
우석훈씨가 스위스나 선진국의 예를 들어서, 한국의 모습을 보게 한 것도 좋았다.
평소 스스로를 생태경제학자(?기억이 안 난다.)라고 표현은 하는데그의 영역을 잘 몰랐고
그닥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의 책을 잘 보고, 또 좋아한다.)
그래서 지난주 시사인에 난 글이 그래서 고마웠다.
그리고 늘 학자나 정치인들이 다루는 방식으로 농업을 다루지 않는 것도 좋았다.
(그들은 농업을 투쟁이라는 기존의 운동권 방식으로 다루곤 한다.)
이번 글이 사실, 농업을 다룬 것이라기 보다는 끝에서는 농지에 더 집중이 된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도 다뤄주는 사람이 있어 감지덕지다.

그러나 좀 어렵다.
배부른 욕심을 부리자면 좀 더 보기 쉽게 표현을 해주면 좋겠다.
좀 어렵다.
나니까 읽었지 일반 독자에게 농업은 재미없는 주제다.
특히 그가 스스로를 표현한 '서울것'들이 (거기에 나도 포함)쌀 직불금, 농지등에 관심 가질 가능성이 얼마나...???



2009년 3월 26일 목요일

once ost 'if want me'









영화 원스 ost


2년전부터 계속 이 음악만 듣고 있다.


그래서 욕 많이 먹는다.


누군가는 이 노래가 한국의 민중가요 같다나.


영화도 좋고


음악도 좋다.


배우들도 친구같이 느껴진다.


슬픈 목소리지만 착한 느낌의 목소리





Are you really here or I am dreaming.


I can't tell dreams from truth


for it's been long


since I have seen you


I can hardly remember your face anymore


When I get really lonely and the distance calls its only silence


I think of you smiling with pride in your eyes a lover that sighs.


If you want me. Satisfy meIf you want me. Satisfy me








경쾌한 노래


이 노랠 들으면 그냥 콧노래가 나온다.


제목이 'falling from the sky'


얼마나 소중했으면 하늘에서 왔다고 표현했을까.








You must've fallen from the sky
You must've shattered on the runway.
You've brought so many to the light
And you are now by yourself

There comes a point in every fight
When giving up seems like the only way.


When everyone has said goodbye


And you're on your own

If you need somewhere to fall apart,
Somewhere to fall apart,


The rules of cain, the rights you've made,
The owls that caw for those to blame,
The broken grass, the fool that asked,
The moving arrow to stop



You must've fallen from the sky.


You must've come here in the pouring rain
You took so many through the light
And now you're on your own

If you need somewhere to fall apart,


Somewhere to fall apart
The ruins of man, the bloody black,The fool that bull the prouder hag,


The night the makes the rattle ack,


The wolves that follow the outed man,


The falling star the way we are the vern


The rules that never ever multiply

[엄마를 부탁해]를 읽는 이유

1.
모 신문을 보면 세상이 아무 일없이 잘 돌아가는 듯한 착각이들다가도
모 신문을 보면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곤 한다.
어떤 사람은 투쟁하고
어떤 사람은 생활에 묻혀 살아간다.

2.
pd수첩 pd가 구속
ytn 노조위원장 구속
얼마전 죽은 여배우의 자살을 둘러싼 공방- 그러나 아직 밝혀지지 않는 누구나 아는 진실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그냥 평범한 일인양 충격없이, 공허하게 들리곤 한다.

3.
북한의 미사일 발사. 그리고 그 속에 얽혀 있는 온갖 사정들
침략에 대한 진실된 사과조차 하지 않은 일본의 끊임 없는 도발
그리고 제대로 청산되지 않는 친일세력들의 움직임들
차라리 모르는 게 속편한 요즘이다. 라고 하다가도
모르고 속편히 살아가다가
옛 역사 속에서 아파한 선조들처럼 다시 아파할 그런 날이 올 것이고

이 땅에서 살고 싶지 않아! 이민가고 싶어라는 말이목 구멍까지 나오다가도 -
이럼 안되지 안되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는 요즘이다.
내 친구들도 나와 같을까?

이 세상을 향햐 화를 내다가도
또 걱정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는 나도 참....

4.
희망을 잃고 싶진 않다.
내 자리에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걸어가야겠다 다짐해본다.
신경숙씨의 '엄마를부탁해'가 왜 몇 달째베스트셀러인지 이해가 된다.
그 책에서 사람들은 따뜻함과 눈물, 잊고 살았던 그 정서를 찾는다.
워낭소리를 보는 사람들의 심리와 같은 거 겠지
아무리 평론가들이 모성애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평론을내뿜어도 -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싶은 게다.


이만 다시 산더미 처럼 쌓인 일의 바다 속에 풍덩 빠져 볼까나.
풍덩 풍덩
냉소는 금물이다!

2009년 3월 11일 수요일

kal기-사건에 관심없는 3가지 이유



kal기-사건에 관심없는 3가지 이유



일본 내각 대변인을 겸하고 있는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진심으로 환영한다. 김현희씨와 한국 정부에 거듭 감사한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정부로서 대응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면담에서 납치피해자 문제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거나 일본 정부가 북한에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납치피해자 문제에 대한 국내적 관심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의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공조가 구체적으로 성사된 점도 성과로 꼽았다.
[3월11일 인터넷 조선일보 발췌]




세상 물정 모르는 제가 이 기사와 김현희씨를 다룬 언론들의 보도를 보면서의문이 생깁니다.
(어릴 때 우리집 화장실에는 김현희씨 수기집이 쭉 놓여져 있었습니다.저한테는 김현희씨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 이 책이 그 책이네요.







첫째. 지금 이 시점에 양국(일본과 한국)의 후원으로 만남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 시점이 어떤 시점일까요?
지금 해외에선 남한과 북한 전쟁날꺼라고 난리입니다.
우린 그저 평소 처럼 살지만요,어제까지만해도 무슨 개성공단 때문에 난리가 났었죠.
뉴스에선 매일 '북한에서 발표한 센 담화문'이 보도 되고 있지요.
전쟁 날 것 같아서 군대에 간 친구들이 걱정입니다.


둘째. 만나고 싶으면 둘이 조용히 만나지 무슨 기자회견을 엽니까.
정치적으로 밖에 안 보입니다.


셋째. 한국 정부는 일본을 형제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물론 한국정부의 뜻대로 잘 안 풀리는 북한이 이뻐보이진 않겠지만 말이죠.
같은 동포인 북한과는 갈데까지 가고, 왜 일본과는 손을 꼭 잡는 이해가 되질 않아요.
가뜩이나 관계가 안 좋은 이 시점에 말이죠.
맨 위 기사 중 "또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의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공조가 구체적으로 성사된 점도 성과로 꼽았다."
이 말 진짜 웃기지 않아요?


이 사건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kal기 사건 진실이 풀리지 않았으면 철저히 조사하면 될일입니다.
일단 시간이 없어서 여기 까지 대충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2009년 3월 1일 일요일

평범한 사람의 투쟁본능 (낙서)

내겐 너무 낯선 단어
최근의 미디어 법 상정을 통한 언론 장악
이명박 정권의 job sharing
용산참사
한나라당에서 추진 중인 인터넷 관련 법들...
작년의 광우병,
단어가 어려워서 생각도 안 난다.
이 단어들로 요즘, 한국사회 난리다.

너무 평범해진거 아니야?
나 하나 잘 살자는 주의도 아니고
내 밥벌이, 인간관계, 생활방식, 가치관이 시대의 대세 속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무단히도 노력하고 있다마는... (그래서 가족, 친구들이 별종이라 함에도 불구하고)
mb정권 이후 우리 사회에 등장하고 있는 무시 무시한 단어들은
현재의 나를 일상에 빠져 있는 나태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쩌면 mb정권의 이러한 행동들이 소시민이나 왕년의 운동가들 마음 속의
투쟁 본능을 일깨우는 것일수도 있겠다.

"아, 진짜 못 참겠다."
"우리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단어들이 주변에서 마구 들려오니 말이다.



mb 정권, 일반시민을 투쟁의 현장으로 모셔오다.
생각해보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의미있게 살았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참으로 무관심했다.
사실 몇 년전, 평화시대의 운동이란 '극적'인 요소가 아무래도 덜한 편이다. (김대중,노무현시대 - 난 그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투쟁이라고 하면 생태, 환경 쪽 이슈가 대부분이었으며, 거리로 나가 촛불들도 전경과 대치하는
그런 극한 상황은... 지금에 비하면 세발이 피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말그대로 운동이나, 반대, 제안이라는 우아한 단어로도 운동이 가능했다면
이제 사람들은 저항, 투쟁, 결사라는 과격한 단어가 등장했으니 말이다.


저항의 새로운 방식을 찾아서
이러한 상황들이 지속되고, 변화가 없을 수록 자연스럽게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라는 행동 즉! act를 구상하게 된다.
그러나 난 독재 시대의 투쟁, 투쟁,투쟁!! 이런거 하고 싶지 않았다.
21세기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라는 노래 하고 싶진 않다.
** 이것들을 무시하는게 아님! 새로운 시대, 사람에 맞는 것을 찾지 못했다는 뜻임
이러한 운동은 청소년, 젊은 대학생들의 정서에 맞지 않다.
아무래도 나 같은 청년들에게 어필하려면 이전 시대의 투쟁이 아닌
운동의 새로운 발견이라 불려지는 평화적인 촛불집회, 인터넷을 통한 여론 운동등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한다. (촛불집회는 미선이 효순이 때 처음 등장했다)


마음이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 지
잘 안 잡힌다. 나 같이 싱숭생숭한 사람들 많을텐데 - 마음은 있지만 현장에
나갈 수 없는 사람도 많을 텐데..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토론도 하고
기사도 검색해보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음에 마음이 답답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2009년 2월 12일 목요일

"우석훈,정부경고에대한"내친구의딱한마디

최근 88만원세대의 저자 우석훈씨가
정부로부터 경고메세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친구가 나에게 보낸 이메일이다.

내 친구의 딱 한마디! " 가지가지합니다.. 증말"

우석훈씨는 내가 좋아하는 학자 중에 한 명이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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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세대' 저자 "정부가 경고 메시지"
우석훈 박사, 블로그에 글 올려…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아




[노컷뉴스 사회부 임진수 기자] 인터넷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검찰의 구속수사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88만원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가 정부 측으로부터 '정부비판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경고를 받았다고
주장해 파문이 예상된다.

우석훈 박사는 11일 CBS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정부로부터 (비판글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우 박사는 "어제(10일) 평소 알고 지내던 정부 관계자와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 같은 말을 들었다"며 "청와대 관계자가 직접 얘기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정부 관계자를 통해 나에게 이를 전달했고, 청와대가 원 소스인 걸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주변의 친한 분들이 내가 쓴 글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다"며 "주로 공직
쪽에 계신 분들이 그렇다"고 밝혔다.

우 박사는 "지난 정부부터 현 정부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서 경고 메시지를
받았는데, 이게 마지막 경고라고 생각된다"며 "자세한 내용은 지인들의 피해가
걱정돼 설명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앞서 우 박사는 이날 오전 1시 33분쯤 자신의 블로그에 '필화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짤막한 글에서 자신이 받은 경고메시지에 대해 설명했다.


우 박사는 "지난 정권에서도 나는 청와대에게 눈의 가시였는데, 본의가 아니게
주변 지인들이 나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며 글을 열었다.

이어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우석훈저, 2006)를 내고 난 다음에, 몇 사람이
곤경에 빠졌었다. 필화 사건에 대한 거의 마지막 경고를 오늘 받은 듯 싶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우 박사는 "모르겠다... 감옥 보낼려면 보내라..."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파리제10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우석훈 박사는 지난 2007년 8월 펴낸
<88만원>을 통해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내며 20대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온 바 있다.

우 박사는 이후에도 <촌놈들의 제국주의>, <괴물의 탄생>, <직선들의 대한민국>
등 왕성한 저술활동과 함께 기고문 등을 통해 현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2009년 2월 9일 월요일

2009년 한국에서 일어난 일- 용산참사


2009년

IT 강국 한국
경제순위 13위
아시아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성취한 얼마 안 되는 나라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의 나라
노벨 평화상을 받은 전직 대통령이 있는 나라
그런나라 한국에서 2009년에 일어난- 황당 사건이다.
그래, 우리나라 다이나믹 코리아다.

사건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마무리와 해결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해결 방식에 대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1. 어떤 네티즌이 "용산 참사" 기사에 대해 이런 댓글을 달았다.

반대하고 ,트집잡고 .......한심한 넘들 ......그럼 경찰을 모조리 처벌하면 승복할래?????사건의 진실은 폭력적으로 공권력에 도전하다가 일어난 사고이다. 공권력에 도전하는 자는 누구든 철저한 처벌을 하여야 된다. 무슨 수식어가 더 필요한가 ?????좌.우 또는 이해관계를 떠나 더이상 트집잡는 행위는 없었음 좋겠다. 검찰발표를 그대로 믿는 성숙된 시민이 되시길 바랍니다.
(검찰 발표를 그대로 믿는 성숙한 시민이 되겠습니다.)


2. 다시금,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얼마전 pd수첩을 보면서 - 아마도 오늘 용산참사 수사 결과를 브리핑한 사람일거다.
고인에 대한 부검에 대해 기자들이 물었다.
"가족의 동의는 안 받으셔도 되나요."
그는 단호하고,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네, 안 해도 됩니다." 단호했다.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마음대로 부검한다?? (근데, 정말 법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는 건가?)
그의 짧은 한 마디에서 그들이 서민을 바라보는 시각을 알 수 있었다.
영화 체인질링에서 나왔던가? 감시없는 권력은 부패할 수 밖에 없다고,


3. 치사한거 같아...

사건 1. 동네 인쇄소에 갔다가 발견한 전단지 한 장
철거민들이 잘못했다는 사진과 내용이 담긴 전단지였다. (컬러로 인쇄)
사장님 왈 "경찰이 놓고 갔어요."
사건 2. 요즘 다음 블로거 뉴스에 경찰 - 혹은 경찰을 지지하는 세력이겠지..-
로 추정되는 글이 무지 무지 하게 많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4. 어렵게 찾아낸 민주주의도 다시 빼앗길 수 있는가?
어제 영풍문고 - 인문학 코너에서 자리 잡고 앉아서 이 책 저 책 보다가
책 발견 - '민주주의 운동사' 였던 것 같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 한국
이 땅에 살고 있기에 '민주주의'라는 것을 까먹고 살았다.
새삼 자랑스럽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오늘 신문만해도 부패한 정권에 대항한 마다카스카르 (아프리카 동남부의 섬)에서
100여명이 죽었다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렵게 찾아낸 민주주의도, 다시 빼앗길 수 있다...(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이번 용산 참사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반대하는 유족들은
법정에 서게 되겠지. 얼마나 괴로울까. 상처받지 않고 힘내길 바랍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거리로 나서게 되겠지
2009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용산참사'로 인해 한 동안 많은 사람들 마음 아파 하겠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2009년 2월 2일 월요일

분쟁지역 전문 피디 강경란 (펌)

전쟁의 눈물 쫓아 20년…그녀는 ‘다큐 독립군’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분쟁지역 전문 피디 강경란씨

김진철 기자
.article, .article a, .article a:visited, .article p{ font-size:14px; color:#222222; line-height:24px; }

» 분쟁 지역 취재를 위해 오지를 떠돈 강경란 피디가 5부작 다큐 <인간의 땅>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강 피디가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자신의 사무실에 붙은 <인간의 땅> 포스터 앞에서 웃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반군·탈레반에 3번 붙잡혀 수차례 ‘죽을고비’“눈앞이 하얘져요…전쟁터 체질 아니거든요”
‘국내최초’ 수식어 따라붙는 158cm 작은 거인오바마와 61년생 동갑 “나이도 잊고 살았네요”
강경란(48) 분쟁 전문 다큐 피디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다큐 경력뿐 아니라 연예인처럼 키와 몸무게가 뜬다. 158㎝, 46㎏. 작은 체구이지만 그는 국내에서 세계의 전쟁터를 누벼온 분쟁 전문 저널리스트 가운데 ‘거인’으로 꼽힌다. 20여년간 아프가니스탄·버마(미얀마)·이라크·팔레스타인·코소보·인도네시아·네팔 등 ‘세계의 화약고’를 두루 누볐다. 국내언론 최초로 버마 민주화 인사인 아웅산 수치 여사와 캄보디아 현직 총리인 훈 센을 인터뷰했고, 탈레반이 파괴한 세계적인 불교유적 바미안 석불의 현장을 국내에 처음 보도하기도 했다.
그가 이번에는 대형 다큐를 가지고 전선에서 돌아왔다. 무려 2년이 넘는 제작기간을 거친 5부작 다큐 <인간의 땅>이다. 한국방송에서 곧 방영할 예정이다. 설을 앞둔 지난 21일 오후 마주한 강 피디는 “편집 작업을 하느라 이번에도 고향에 내려가기는 글렀다”며 웃었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들에 파묻혀 살아온 그의 눈빛은 생각과 달리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는 “빗발치는 포탄과 총알이 아닌 그곳 사람들의 눈빛을 보러 다녔다”고 말했다.
-이번엔 다섯 편짜리 큰 기획이네요?
“2년이 넘게 걸린 다큐들이에요. 다섯 나라를 담았지요. 하나는 아프가니스탄, 반군이 있는 정글의 버마, 네팔, 방글라데시, 이라크의 쿠르드…. 기획안을 낼 때 취재기간 동안 역사적 변화, 굵직한 사건들이 터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적중했어요. 아프가니스탄도 그렇고 버마도 그랬죠. 그런데 버마는 샤프란 혁명이 그렇게 크게 터질 거라곤 예상을 좀 못 했죠. 아프간에서도 (샘물교회) 인질만 안 죽였으면 했는데….”
그렇게 찍어 쌓인 비디오테이프가 30분짜리로 모두 1500개다. 2007년 봄 제작이 본격 시작돼, 꼬박 2년이 넘게 걸렸다. 마오 반군과 성매매 여성으로 갈린 네팔의 자매, 탈레반과 정부군으로 나뉜 아프간 형제의 영화 같은 삶이 담겼다. 무관심과 이기심 속에 사라져가는 소수민족, 빈곤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시아 사람들의 모습들이 아프게 펼쳐진다.
그가 다큐멘터리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1980년대 중반 대학원을 마치던 해 여름에 케이엔시시(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국제·평화 문제를 다루는 일을 했죠. 그러다가 88~89년 무렵에 우연히 케이비에스에서 전문리서처 같은 일을 하게 된 거예요. 그때 한국전쟁 다큐를 만들고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어깨너머로 방송 어떻게 돌아가나 배우고 그랬죠. 대선배 한 분이 케이비에스를 그만두고 나갔는데, ‘몽골리안 루트’라는 기획을 들고 엠비시 프로덕션으로 나갔죠. 최근에 방영된 건데 그 기획이 되게 오래된 거예요. 그때 나를 불렀고, 제가 미국 쪽 헌팅을 하면서 석 달 정도 미국에서 열심히 놀았지요.”
그러다가 제일기획에서 다큐전문 큐채널을 만들게 되고, 지인의 소개로 입사해 조직 생활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됐다.
“90년대 초반쯤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마음대로 하면서 참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큐채널이 삼성 영상사업단으로 가면서 얼마 안 돼 그만뒀지요. 1년 반 정도 있었는데 오래 있었던 거죠.”
-조직 생활이 잘 맞지 않으신가 봅니다.
“체질에 잘 안 맞아요. 큐채널 초창기만 해도, 하고 싶은 거 다했는데, 영상사업단 가면서 돈 많이 드는 것에 대해서 조금씩 견제 들어오고, 기다리라 하고, 결제라인 길어지고 하면서…. 내가 하는 건 시사성 있는 다큐라서 (일이) 터지기 전에 가 있어야 하는데, 이해를 못 하는 거예요. 유고사태 때 유고에 들어가려고 2~3주씩 마케도니아에서 기다리고 그러는데, 위에서 그게 말이 되냐고 하면 일을 할 수가 없는 거죠.”
강 피디는 분쟁 전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게 의도된 건 아니라고 했다.
“처음부터 분쟁을 다뤘던 건 아니죠. 아웅산 수치 여사를 좋아해서 한번 만나봐야겠다 해서 버마로 갔어요. 그런데 안 만난 것만 못하게 돼버렸지요. 좀더 카리스마적이고 극단적인 모습이길 바랐죠. 아웅산은 자꾸 ‘다이얼로그’를 얘기하는데, 내가 보기엔 대화로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대화를 화두로 잡고 가는 게 답답한 거예요.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과 함께 고통받으면서 희생하길 바랐어요. 그러다가 버마 분쟁지역을 계속 돌아다니게 되고, 점점 더 주제들이 전선으로 모이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그는 뜻밖의 얘길 했다.
“근데 사실, 난 전선 체질 아닙니다.”
-의외네요. 어떤 면이 그런가요?
“나 되게 무서워해요. 마음속으로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행동으로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총을 수없이 잡아봤는데 한 번도 방아쇠를 당겨본 적은 없어요. 분쟁지역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총을 주면서 한 번 쏴봐, 그러거든요. 방아쇠에 손가락이 가잖아요? 거기서부터는 딱 막혀요. 전쟁터를 가면, 그런 딱 막힘, 막아서는 지점이 있어요. 그걸 뛰어넘기가 정말 어려워요.”
-그런데 어떻게 20년간 전쟁터만 돌아다녔나요?
“포탄 날아가는 것을 취재하러 가는 게 아니고 거기 사는 사람들의 답답함을 찍으러 가는 겁니다. 처음에 이슬람 지역 사람들, ‘인샬라’ 얘기하는 거 너무 싫었어요. 특히 팔레스타인 가면 그러죠. 수천 년 동안 그들을 도와주지 않은 신인데. 요즘엔 이런 게 이해가 좀 돼요. 너무너무 대안이 없을 때, 정말로 막바지에 가면 나오는 게 인샬라고 신이죠. 그러면서도 늘 감사하잖아요. 오늘 안 죽고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서요. 진정한 행복이에요.”
-연민도 있지 않을까요?
“내 앞에 죽어가는 사람들 병원으로 데려가는 일이 아니라, 어차피 저널리스트 바닥에 들어왔다면 다른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없을까, 그런 게 처음엔 고민스럽지요. 캄보디아에서 폴포트 막판 시절이었어요. 시내에 폭탄이 터져서 사람이 죽어가는 걸 내 옆에 있던 카메라맨이 병원까지 데려간 일이 있었죠. 그거 가지고 우리끼리 논쟁이 붙었어요. 니가 할 일이냐 그게, 니가 해야 할 일은 찍는 거다, 하면서요.”
-반군이나 탈레반한테 잡힌 적도 있다면서요?
“세번 잡혀봤어요. 그런데 아무 생각 안 나요. 눈앞이 허예지는 거 있잖아요, 일사병처럼. 그리고 거기 사람들은 이런 게 일상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죠.”
-이라크 전쟁 때도 위기가 있었지요?
“2003년 4월 미군이 바그다드를 함락하던 날, 우리나라 방송 기자들과 함께 요르단에서 이라크 쪽으로 국경을 넘고 있었어요. 영국 <비비시>(BBC) 취재진하고 모두 7대 차량이 함께 들어가고 있었죠. 그런데 차들이 주유소로 들어섰어요. 화장실 때문이었는데, 저만 빼고 모두 남자들이라서 제가 마지막으로 화장실엘 갔죠.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뒤에서 총소리가 ‘따다다’ 나는 거예요. 얼른 뛰어나왔는데 내가 탔던 한국 차들은 다 도망가고, 총 든 이라크 남자들이 쫙 깔렸더라고요. 총 든 남자들이 도망가지 않은 비비시 애들을 차에서 끌어내 막 굴리고 있더군요. 한국 보도진 차는 다 가버렸으니까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일단 무장 게릴라들에게 가야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배짱 좋게 그쪽으로 갔죠. 그런데 총 든 남자들은 저한테 신경도 안 쓰고 지들끼리 막 싸웠어요. 통역에게 물어보니까 미군이 오폭해서 사람들이 몰살당했는데 그걸 보도해 달라고 비비시에 요구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비비시 통역이 바그다드에 더 많은 희생자들이 있다며 우리는 그걸 보도해야 한다며 그들을 설득했죠. 설득이 먹혀서 비비시 차가 막 출발을 하는데, 그때 덩치 큰 아저씨가 날 확 잡아당겨 자기 무릎 위에 태워줬어요. 비비시 차가 완전 만원이었거든요. 그들이 절 놔두고 갔으면 저는 여기 없을지도 몰라요. 나중에 바그다드에 와서 그 사람이 그러더군요. 니가 좀 더 뚱뚱했더라면 아마 널 못 태웠을 거라고.”
강 피디는 결혼도 안 했고 집도 없다. 모아둔 돈도 별로 없다고 한다. 나이에 맞춰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평범한 삶과 달리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처럼 보였다.
-결혼은 왜 안 했어요?
“못 한 거죠. 이제는 사람 만난다는 게 힘들어요. 새로운 일이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거든요. 옛날에는 한 번도 안 가보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공항에 내려서도 힘겹다 두렵다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택시 기사 잡아서 호텔 가고 여행사 통해서 통역 섭외하고, 그걸 통해서 하나씩 풀어나가는,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기’를 해냈는데, 지금은 어딜 간다 그러면 겁이 나요. 편집도 어렵죠. 현장에선 상황이 힘들게 돌아가고 정신없고 해서 큰 윤곽으로 이해하고 디테일을 놓치잖아요. 그런데 필름을 다시 보면 되새김을 하게 되잖아요. 숨이 꼴랑꼴랑 넘어가면서도 정말 살고 싶어서 그러는 눈빛들이…. 그게 다 보여요. 스물도 채 안 된, 살아남은 여자들이 애들 줄줄이 딸려서 꺼이꺼이 우는 모습 보면 저 여자 인생이 어떨까, 정말 먹먹해져요.”
20여년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을 뛰어다닌 강 피디는 이제 휴식이 필요해 보였다. 마침 그 또한 이번 <인간의 땅>을 마무리하고 당분간은 박사 논문 작업과 책 쓰기에 매달릴 계획이라고 했다.
“난 내 나이도 잘 모르고 살았어요. 오늘 오는 길에 라디오를 들으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61년생이라면서요? 마흔아홉살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내 나이가 그렇게 들었나, 깜짝 놀랐어요. 내가 61년생이거든요. 그런 생각이 들면서 머리가 좀 복잡해졌지요.”
하지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얘기가 나오자 그의 눈은 다시 반짝였다.
“한참 <인간의 땅>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가자에 있는 정보원한테 전화가 왔어요. 일이 터지기 직전이라고 오려면 어서 오라고요. 하지만 5부작 편집 작업을 해야 해서 가질 못했죠. 그러고 나서 의자에 앉아서 편집하고 있는데 일이 손에 잡히질 않더라고요. 내가 그냥 가서 서 있기라도 해야 하는데….”

» 분쟁지역 전문 피디 강경란씨
“분쟁지역에 터 잡고 장기 다큐 찍고싶어”
강경란 피디는 이화여대 사회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20여년간 프리랜스 피디로 활약하면서 아프가니스탄·버마·이라크·팔레스타인·코소보·인도네시아·네팔 등 세계의 오지와 분쟁지역을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녔다.
1989년부터 한국방송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해왔고 다큐 전문 <큐채널>에서 국내 최초로 버마의 민주지도자 아웅산 수치를 단독 인터뷰하는 등 분쟁 전문 피디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독립 다큐 전문 프로덕션인 에프엔에스(FNS)를 차리고 나서는, 탈레반이 파괴한 세계적인 불교유적 바미안 석불의 현장을 국내에 처음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강 피디는 “요새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아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사 논문을 마치고 책 쓰기 작업을 마친 뒤에는 (아시아 분쟁 지역 등지에)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장기적인 다큐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2009년 1월 20일 화요일

제어되지 않는 힘에 대처하는...

제어되지 않는 힘,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절대 권력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나도 잘 모르겠다.

1. 미네르바 사건은 어처구니 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가어째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다만 놀라울 뿐이다. 이 나라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끝까지 가는구나

최근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이야길 들으면서... 그 다음은 어디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스로를 검열하고 있는 나를 본다. 이것이 그들이 노린 것일까?

법원에서 어떻게 판결이 날 지 모르지만법원마저 권력에 손을 들어준다면... 힘 없는 개인들은 다시 항소를 하거나, 1인 시위,,, 또 뭐가 있을까? 미네르바씨 많이 괴롭겠다. 취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2.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주변에서 아무리 말리고 설득해도 그들이 no!라고 하면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다. 2003년 모두가 반대할 때 미국이 못 들은 척,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듯이 말이다.
힘 있는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뜻대로 할 수 있다.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것이 이스라엘에 이롭다고만 할 수 없지만 말이다.또 하나의 걱정은...전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은 누가 보듬어줄까?이다.

3년 동안의 한국전쟁은 수 많은 개인들에게 아픔을 남겼듯이
-전쟁통에 부모가 죽어서 생계 속에 뛰어 들어야 하는 아이, 보호 받지 못하는 아이의 심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내 조카 같은 '아이'가 아닐거다.
전쟁에 노출된 아이들은 거칠어 진다. 돌을 던지고, 침뱉고
(2002년 겨울 아프가니스탄에서 나도 당해봤다.)

3. 용산에서 일어난 철거민의 죽음-그 당시의 치열한 상황이 그림그려진다.

가슴 아픈 사건들이 생기지만, 지구는 돌아간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에 약간의 절망이일지만...

큰 사건들이지만 -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일들이다.
나도 가끔은 동료를 의심하고, 또 힘이 있으며 확! 때려주고 싶고권력을 휘두르고 싶어 한다.
나 처럼 그들도 그런 것이다. 그들과 나도 같겠지.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조금이나마 진실되게 살아야겠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내 자신을 지켜보며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겠지.

2009년 1월 11일 일요일

88만원세대 내 친구 주희

붙임성있고 서글서글 하고 성실한 친구 주희 (2살 많지만 우린 친구다)

3년동안의 조교일을 그만두고 (사실상 짤리는...- 3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함으로 사용자 측에서는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있다.)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다.
퇴직금으로 한 달치의 월급 100만원을 받는단다.
주희, 그리 유명한 대학은 아니지만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 나왔고
월급에 대한 큰 욕심도 없다.
나름 열씨미 살아온 친구, 생활력도 강하다. 이 사람 데려가는 사람은 완전 땡잡은 거다.
최근 월 80만원 (4대 보험 안되고, 교통비 지원없음, 식대없음) 받는 사무실에서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현재 갈까 말까 고민 중이다.
얼마전 다른 곳에 면접 보러 갔고 물론 퇴짜맞았다.
명랑한 내친구 완전 운동권 다됐다.
"노조는 정규직을 위한 거야, 비정규직은 어림없어."
"이미 사람을 박아 놓고서는 형식적으로 채용공고 냈다더라"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해준다. ( ngo에서 이미 자원봉사하면서 살고 있기에
취업고민은 안 한다. 그래서 차라리 속 편하다. )

나는 그저 친구에게 위로를 할 뿐이다.
조교로 3년 동안 안주희 인생에서 배운게 무엇이냐 물었고 친구는 자신의 인생에서 배운 것을 쭉 말해준다. 인간관계, 어른을 대하는 방법 등을 배웠다고 한다.
또 물어본다. "앞으로 직장을 구할 때 무엇을 배우고 싶냐고, 돈을 못 받더라도 주희 인생에서 정말 갚진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직장을 찾아보면 어떨까" 라고 이야기 해본다.
내 친구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수준에서 맞추어가는 법을 배우게 되겠지.
가끔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상황들에 분노가 있겠지만...
( 이 분노가 그리스에서는 집단 시위로 끓어 올랐었지...)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2가지 생각을 해본다.
첫째, 왜 이렇게까지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가, 이 사회 대체 무엇이 문제 인가, 무엇이 분배되지 않기에 이런걸까, 우리의 선배들은 미래세대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하는 그런 생각 - 이건 우석훈 씨가 쓴 88만원 세대를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올 수 도 있고
둘째, 88만원 수준을 받는다 해도,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거
60억 인구 중 12억이 절대기아 선상에 놓여 있다는 거
한국은 아직 경제 대국이라는거 (물론 거품이 끼어 있지만)
부유하게는 살지 못하더라도 그럭저럭 살 수는 있다는거
그 까이거 핸드폰 안 쓰면 되고
그 까이거 컴퓨터 안 쓰면 된다. 자전거 타고 도서관 가서 공부하면 되고
기존 주류 세대가 이뤄 놓은 시스템에서 투쟁하는 방법도 있지만
새롭게 문화를 창조할 수도 있다는 거
그렇기 때문에 너무 절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의 모든 내 친구들이 말이다.


첫번째 생각과 두번째 생각이 조화롭게 - 되었으면 한다. 나는 후자의 인생을 선택했고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고 전자의 활동을 하는 친구들을 존중하고 존경한다. 역할분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그리스에서 일어나는 700유로 세대들의 시위
한국의 88만원 세대, 작년에 읽은 천유로 세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지켜봐야 겠다.